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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은 속삭인다 - ![]()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북스피어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칠다고 생각했는데 89년 작, 20년 전 소설이다. 시기적으로는 스나크 사냥이나 화차보다 앞서고, 완성도에서도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재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지금까지 봐온 다른 작품들이 비교 우위에 있다는 것. 굳이 비교하자면 낙원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한단계 아래에 놓고 싶다.
내가 이렇게 느끼는 건 아마도 여기서 다룬 소재의 문제인 것 같다. 애초에 초자연적인 힘이나 과학의 틈새가 있다고 인정하고 작품에 돌입하게 되는 일부 환상 소설과 달리 미야베 미유키의 추리물을 볼 때는 '이건 현실의 일이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하게 된다. 도입에서 제기되는 미스터리가 어떤 식으로든 현실의 방법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낙원과 마술은...에서는 그 간극을 부정확한 무언가, 혹은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메워버렸으며 '설마 그건가'라고 느꼈던 것이 결말에 '그거다'라고 제시되는 순간 맥이 빠져버린다. 그게 낙원의 경우는 사이코메트리-간접적으로 인정된 것이기는 하지만-였으며, 마술은...에서는 서브리미널 메시지와 최면암시에 의한 살인이다.
최면/서브리미널 메시지로 사람의 행동을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조작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 나로서는 이 트릭이 맥빠질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뚜렷한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는 없다. 다만 그게 효과가 있다고 믿는 사람은 효과가 있다고 느낀다. 일종의 최면인 셈.) 극적 허구라고 인식하고 넘어가면 되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시작할 때 마음가짐의 문제다. 개인 취향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고. 같은 이유로 나는 영화 프레스티지의 결말도 그리 안좋아한다. 반면 마술은...과 비슷한 소재를 택한-서브리미널 광고와 후최면 암시를 이용한 범죄, 그리고 쉽게 최면을 걸 수 있는 범죄자가 나오는-지뢰진의 마오 에피소드는 좋아한다. 그건 초중반부터 그런거다! 라는 전제를 깔고 나오기 때문에. 타이밍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아무튼, 회의적으로 보는 소설 소재는 그렇다고 치고.
구성 면에서는 뒤의 해설에 깔끔하게 설명이 되어 있다. 의문스럽게 자살/사고사 당한 3명의 여자, 마지막 희생자를 치어버린 택시 운전기사의 조카는 자신의 삼촌을 구하기 위해, 삼촌의 과실이 아니라 여자가 뛰어 들었다는 증거를 찾으려고 하면서 우연치 않게 진상에 다가서게 된다... 정도로 요악할 수 있겠다.
주변 인물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주인공의 일상을 묘사하며 깊이를 더하거나 사건과 연계하는 솜씨는 이 때부터 돋보인다. 다만 최면이라는 범행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 사전 포석을 깐 서브리미널 메세지는 노골적인 구석이 있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범인의 장광설과 그 이후에 또 밝혀지는 주인공의 친아버지 실종에 관한 부분은 지나치게 속도를 내서 지나갔다는 느낌.
역시 해설에도 지적되지만, 범인, 범행 방법, 범행 동기가 밝혀지면서 클라이막스에 도달하는 추리물과는 달리 진상이 밝혀진 이후에 한 번 더 국면 전환이 있다. 사고 증언을 통해 삼촌을 구해주고, 주인공의 편의를 봐주려는 남자가 실제로는 실종된 주인공의 아버지를 사고로 죽인 사람이며, 속죄하겠다는 생각으로 주인공을 돕고 있었다는 걸 밝히는 부분. 작가는 아마 이걸 더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착각하도록 연막을 열심히 쳐놨다. 그리고 그걸 알게된 주인공이 범인처럼, 사적인 복수를 하느냐-절대로 붙잡힐리도 없고, 직접 피를 묻히지도 않는 쉬운 방법으로-용서를 하느냐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주인공의 엄청난 사건을 겪고 성숙한 판단을 내린다는 점에서는 성장 플롯 같은 면도 있다. 다만 이 두 번째 국면 전환은 에필로그 같은 느낌을 주며 그리 눈에 띄지는 않는다. 아버지에 대한 괴로운 기억이 주인공의 인격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는 서술은 앞에서 반복되지만 주인공의 결정과는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중간에 밝혀지는 진상에 나오는 진범, 사람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걸로 보이는 마술사 할아범에게 시선을 빼앗기는 면도 있다. 다른 사건의 피해자이면서 그에 대한 상처를 간직하고 있고, 결말에서는 약간 성장하는 소년이라는 인물은 모방범에도 나오는데 모방범에서는 매끄럽게 처리되었다고 기억하는걸로 봐서는... 역시 소재와 전개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한마디로, 더 많은 설명을 할애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모루의 캐릭터는 진범보다 약했다. 아니 진범이 너무 강했다. 안좋은 의미로.
혹평을 한 것 같지만 -_- 사실 재밌다. 초기작이고 20년 전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꽤 훌륭하고, 10년 전에 봤으면 더 재밌었을 것 같다. 그 때는 좀 덜 회의적이었으니. (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