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그 길에서

2008/03/31 00:48

 



 0.
 다큐멘터리 영화기는 하지만, 혹시나 해서 밝혀둠. 내용에 대한 언급 있습니다.

 1.
 모처럼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대학로에 있는 동숭아트센터까지 갔다. 조그마한 상영관 안은 1/3 정도 차 있었고,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으레 그렇듯이 같이 온 사람들과 가벼운 잡담을 나누는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8시가 되고 상영관 불이 꺼지고, 영사기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극장 안은 금새 조용해졌다. 그 후로 97분. 영화 소리를 제외하면, 극장 안에서 들린 것은 훌쩍거리는 소리와 무거운 한숨과 한탄이 전부였다.

 2.
 고백하자면, 사실 5년 전만해도 로드킬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다. 한 2년 전에는 "로드킬? 그거 멀리 땅 넓은 쌀나라에서 국립공원 지나가다가 사슴이나 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극히 최근까지도 국내의 로드킬은 가끔 지리산 인근에서 고라니가 차에 치이는 정도가 전부라고 생각했다. 펜스나 좀 설치하고 동물들이 지나가는 길을 좀 추가하면 해결되는 문제 아닐까?

 3.
 한국에서, 길 위에서, 얼마나 많은 동물이, 얼마나 많은 종이 죽는가? 어디서 죽는가?
 영화에 따르면, 대답은 다음과 같다.
 지리산 인근에서만 연간 3000건, 거의 대부분의 야생동물이, 모든 길 위에서.
 포유류의 50% 이상이, 조류의 40% 이상이 로드킬로 죽고 있단다.

 4.
 왜 그렇게 많이 죽을까? 이유는 다양하다고 한다.

 한국의 도로 총 길이는 10만km라고 한다. 평균적으로 1제곱킬로미터 당 1km의 도로가 있는 셈이다. 행동반경이 좁은 너구리도 대략 1제곱킬로미터를 돌아다닌다고 한다. 삵은 3~4제곱킬로미터를 돌아다닌다고 한다. 지리산 인근의 도로는 이미 지리산을 고립된 육지 한가운데의 섬으로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야생동물이, 길을 건너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환경인 셈이다. 삵에게 위치 추적기를 달아보자 하루에도 17, 18번을 도로를 건너다닌다고 한다.

 굳이 고속도로가 아니라도 자전거를 타고 갈 때, 혹은 차도 근처에 서 있을 때 옆으로 버스나 대형 트럭이 지나가면 몸이 트럭 쪽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몸이 가벼운 새나, 작은 곤충에게는 그야말로 죽음의 덫인 셈이다. 차에 깔린 곤충을 먹으러 도로에 내려 앉았다가 죽기도 한다고 한다.

 두꺼비, 개구리 같은 양서류는 말할 것도 없다. 시골에서, 비가 온 뒤에 도로를 달리면 차바퀴 밑에서 개구리가 깔려 죽으면서 펑펑 소리가 난다는 이야기를 몇 년 전엔가 들었었다. 비온 뒤 하루 만에 100마리가 넘는 개구리가 깔린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한다.

 냉혈동물인 뱀의 사정은 더욱 안타깝다. 햇볕에 따뜻해진 아스팔트 위로 몸을 말리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도로로 기어올라온다. 차바퀴에 깔려 내장이 비집어 나온 채로, 소리없이 비명이라도 지르는 것처럼 연신 입을 벌리면서 꿈틀거린다. 자막처럼, '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하고 외치는 듯 하다.

 5.
 도로 자체가 야생동물한테는 죽음의 덫이나 다름없다. 애초에 야생동물 서식지를 가로질러 나 있는 도로를, 야생동물은 어쩔 수 없이 건너다닐 수 밖에 없고, 중앙분리대나 옹벽이 있으면 도로 안에 갇힌 것이나 다름없다. 덫이나 통발처럼. 보도블럭 높이만 해도 남생이는 올라갈 수 없다. 개구리는 조금 깊은 배수로에만 빠져도 다시 올라오지 못한다.
 무슨, 애초에 야생동물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처럼 착실하게, 꾸준하게 죽여나가고 있는 셈이다.

 6.
 불편한 영화였다.
 시종일관 비춰지는 걸레조각 같은 새 시체, 차에 치여 내장과 태아를 쏟아내고 죽은 고라니 사진, 교통사고를 당하고 기적적으로 회복해 야생으로 돌려보내졌다가, 채 몇개월 되지도 않아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짓이겨진 팔팔이의 시체를 묻는 장면을 보면서 우울해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낚였다는 기분이 안드는 것도 아니다. 일부러 감정적인 반응을 자극하려고 한 듯한 - 그게 의도가 아니었다고 해도 -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그래도 봐두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로드킬 문제는, 사실 딱히 해결책이 없어 보인다. 차도는 필요하고, 차는 달려야 한다. 로드킬이 특정 지점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도로 전체에서 일어나는 이상 몇백km 마다 생태 통로 한 두개 설치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누구에게 뚜렷하게 잘못이 있어서, 그 사람을 탓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라 더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결론을 내야할 지 모르겠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했다. 최소한 관심이라도 가지자. 오늘 느꼈던 슬픈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고 잊혀지겠지만, 최소한 이 땅에 살아가는 생물이 인간만 있는게 아니라는 것은 기억해 두자고. 당장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도, 그렇다고 당장 개발 반대 시위에 뛰어들 용기가 없더라도, 대체 뭐가 벌어지고 있는지는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최소한 옳고 그르다는 목소리는 내보자-고.
 
Posted by azuret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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